(白又칼럼 46회)

누군가 수필(隨筆)을 한자 뜻풀이로,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적는 글이라고 소개했다. 이로 인해 수필은 시쁜 문학, 아무나 쓰는 다소 격이 떨어지는 잡문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삶의 철학과 통찰, 진솔함, 소박하고도 함축적 문장, 체험의 의미화와 사색, 구성의 요건 등등을 두루 갖춘 글, 즉 격조 높은 문학 장르로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분이 곽흥렬 교수이다. 큰 문학상을 많이 받았고 심사, 평론, 강의로 수필보급에 크게 공헌한 곽교수의 작품에 ‘충신과 역적 사이’가 있다. 

 임란 때 우리나라에 귀화한 ‘사야가’ 즉 ‘사성 김해김씨’의 시조인 ‘정헌대부 병조판서 김충선’에 관한 작품이다. ‘가토 기요마사’의 좌 선봉장으로 우리나라에 왔으나 처음부터 명분 없는 전쟁에 반대했고, 어려서 유학을 배워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겠다는 포부로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 장군에게 귀순한 장수이다. 이후 수많은 전공을 세우고 우리나라에 조총 만드는 기술을 보급했으며 이괄의 난을 평정했고 병자호란에도 공을 세운 충신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 입장에서, 그가 유학의 관점으로만 보아 과연 충신이냐? 그런데 풍신수길의 전쟁은 나눠줄 영지가 부족해 일으킨, 사무라이를 처리할 목적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다른 번(藩)의 입장에서 볼때 명분없는 ‘화살받이’ 였다. 그때 참전한 ‘다테 마사무네’는 반년 만에 철수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 상륙조차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의 ‘일본’이라는 개념으로 ‘적국에 항복한 역적’이라고 보는 근거는 희박하다. 가창 우륵리에 세거하는 ‘사성김씨’의 후손은 명문으로 자리 잡아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다. 필자가 아는 후손 한 분도 사리 판단이 명확하여 진퇴가 명쾌하고, 정의감이 뚜렷하며 결단성도 남다른 면모를 보이는 예의 바른 분이다. 

또 다른 ‘항왜’(降倭,명칭이 적절치는 않으나)가 청도에도 있으니 각남 함박에 세거한 함박 김씨는 ‘사여모’의 후손이고, 매전 송원에도 일부가 살았다. 아무튼 우리가 볼 때 대단한 충신 집안인 ‘우륵김씨’를 지금의 통일된 일본은 기록도 없애는 등 시각이 미묘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충신과 역적 사이’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12. 3. 이후 격변의 시대를 겪고 있다. 겨우 살만한데 ‘이러다가 남미의 꼴 나는 것이 아니냐?’ 는 서민들의 탄식과 우려가 나라를 뒤덮고 있다. 정치는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여러 사람이 ‘충신과 역적 사이’ 백척간두에 놓여있다. 

 국민은 이번 계엄의 시비곡직을 떠나 그 원인에 대해 거의 다 알게 되었다. 과정의 인간적인 배반이나, 하극상의 배신, 위법성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처음에 과정을 숨기려는 듯 편향된 시각이던 일부 언론도 광범위하게 확산된 유튜브 등으로 다양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공수처 체포영장의 불법성, 체포 과정의 위조 공문 논란, 권한이 없는 내란 수사를 대통령의 면책특권인 권한 남용으로 어거지 수사하여 검찰에 넘긴 문제, 구속영장 청구와 발부 법원의 불법성, 검찰 구속기소의 타당성 문제, 구속기간 산정의 혼란, 헌법재판소의 수사기록 증거의 위법성 등등을 국민이 손금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 위법과 절차적 잘못으로 국민이 납득, 승복하지 않으면 장차 어떤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두 갑자 전 매국노, 을사오적이 있었다. 그들의 치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손도 후손임을 부인한다. 그런데 지금 ‘신 을사오적’ 명단이 다양하게 시중에 떠돌고 있다.

 검찰은 전국 검사장 등 관계자 회의 끝에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처음부터 공수처의 잘못된 체포와 수사였는데 검찰이 내란에 대한 수사권이 없었으니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기소한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법원이 그 잘못을 알지 못할 리가 없으니 ‘관할이 적절한 구속영장’에 대해 두 번이나 기각했고. 기소 후에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추가 수사는 불가하다. 그러니 구속이 취소 되거나, 기소 기각의 예상이 많은 데, 이때 검찰은 존재가치를 잃게된다. 

그 결과를 검찰이 예상치 못 했을 리가 없는데 강행했으니, 손자병법 중 하나인 이대도강(李代桃僵), 즉 복숭아를 대신하여 오얏이 죽는 고등계책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배신 않고 정의를 구하면서 검찰이 ‘대신 쓰러진다.’는 방법이다. 그러나 회의에서 구속기소를 강력히 주장한 몇명의 계파가 이미 밝혀져, 집권을 향한 단순한 처벌 목적 기소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니 ‘충신과 역적 사이’는 법원에 달려 있는데, 상식으로도 납득이 안가는 판결을 많이 보아온 터라 국민은 불안하다. 

 헌법재판소는 수사 기록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데, 그것을 불법 제출받아 쓴다고 하고, 그조차도 오염된 과정이 동영상으로 낱낱이 알려져 있다. 국민이 그 증거의 결과를 승복할까? 헌법재판소 존립까지 영향이 미치는 ‘충신과 역적 사이’이다. 위법 탈법이 드러난 공수처 등과 가당치 않은 체포, 구속영장의 발부 등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이미 내렸다고 본다. 문제는 개인의 ‘충신과 역적 사이’보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혼란이라는 점에 있다. 위법, 탈법, 배반의 난무와 ‘신 오적’이 <나라의 큰 어려움> 조짐이 아니기를 바란다. 국민은 애가 탄다.(2025. 2. 白又)